환자의 손을 잡아주기

원래 일요일은 10시부터 근무입니다만, 오전에 불임시술을 받는 분이 있으셔서 8시반까지 병원에 왔습니다.
불임 시술의 단계를 매우매우매우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1) 호르몬 약물로 난소를 자극해서 난자를 많이 만들게 하고 2) 그 난소를 뽑아서 3) 수정관 수정을 하고 4) 다시 자궁에 넣어줍니다. 오늘 오신분은 2번을 하러 오신 분이었죠. 저는 산과 분만장에만 있기 때문에 부인과 시술이나 수술은 잘 모릅니다. 시술 하는 동안 모니터링을 해야한다고 해서 갔었는데, 비품들이 어디있는지도 잘 모르고 모니터도 쓰던거랑 완전 달라서 좀 버벅거렸네요.
환자분께 IV라인을 잡고 혈액 채취를 해야해서 설명을 드리는데, 아 이분 너무 긴장하셨더라구요. 잔뜩 겁을 먹으셔서는 떨고 계시실래 "추우세요?"라고 물어볼 정도.

시술이 시작되었는데, 이게 좀 많이 아픕니다. 그래서 약도 좀 쓰긴 하는데, 너무 예민하신 분이라 시술 내내 괴로워하시더라구요. 저라도 좀 무서울 것 같습니다. 시술 부위를 무균상태로 유지하기 위해서 얼굴 위까지 갑갑하게 방포로 가려놓고 자기들끼리의 언어로 쒤라쒤라~.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고 "다 끝났어요~~" 라고 하면서 계속되는 아픈 시술들...

원래 정신이 딴 곳에 팔리면 아픈 것도 잘 모르곤 하죠. 이럴 땐 대화라도 해서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게 좋아요. 제가 시술의 과정을 자세히 알았더라면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드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갖고 본과 3학년때 학생 실습때 한번 본 걸 억지로 기억해내서 설명해드렸습니다. 너무 불안해하시길래 '효과가 있을까?' 반신반의하면서 "손 잡아드릴까요?"라고 했죠.

괴로운 시술이 끝나고 회복실로 갔습니다. 환자분께서 한숨 놓인다고 하시면서 걱정했던 것 보단 괜찮았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러면서 "손 잡아주셔서 정말 도움이 되었어요. 감사드려요."라는 한마디. 제 작업 컴퓨터가 회복실에 있는 관계로 계속 회복실을 들락날락거렸는데 보호자분께도 제 이야길 하시고, 너무 고마워하시더라구요.


저번주까지만 해도 라인잡고 채혈하고 그런 것들이 아직 미숙하고 시키는대로 하는 것에 급급해서 환자분들에게 "채혈 하러 왔어요~"라고 왕창 피만 뽑아갔는데, 이제는 좀 여유가 생겨서 왜 검사하는지 설명도 해드리고, 간밤에 편안했는지 안부도 묻고 농담도 좀 하고 그럽니다. 그런데 오늘만큼 환자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감사의 이야기가 뿌듯한 적은 없었던 것 같네요.

채혈, 라인잡기를 하면서 한마디 건내기, 모니터링 중에 손잡아주기, 대화하기... 생각해보면 정말 사소한 것인데도 환자분들께서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여유로울 때가 아니면 쉽지가 않죠. 응급 상황에선 정말 정신없거든요. 교수님게서 말씀하신 "실력이 없으면 친절이고 뭐고 아무 소용없어"라는 말이 떠오르는 군요. 얼른 수기들을 능숙하게 할 수 있도록 실력을 쌓고 여유부리면서 친절한 인턴이 되어야겠어요.
by 정목 | 2007/03/11 15:18 | 병원 일기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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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緣/affinity at 2007/03/11 15:59
이런 의사분들이 많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Commented by 이온 at 2007/03/11 15:59
엄마가 편찮으셔서 병원에 자주 가는 편인데요,
의사 선생님께서 웃는 얼굴로 맞아주시거나
따뜻한 말 한 마디 건네주시는 것만으로도 힘이 나더라고요. ^ ^
아픈 사람 입장에선 작은 친절이라도 정말 큰 위로가 된다고 할까요.
정목님의 글을 읽으니 마음이 흐뭇해지네요. ^ ^
Commented by climber at 2007/03/11 19:52
인턴선생님~ 나 현수라오~ 놀러왔다네 ㅋㅋ
Commented by ontoj at 2007/03/12 11:52
환자한테 위로라는게 별게 없더군요. 사정이 있어 병원엔 정말 자주 가죠.
그때마다 직원(의사,간호사,행정직원..)들의 말, 행동 하나에 상처를 얻을때가 참 많아요.
사실 정목님처럼 잘 대해주시는 직원분들도 많은데 왜 잘 하다가도 아픈 말 한마디가 막 들쑤셔 놓잖아요. ^^;;
이상하게 대신해서 감사하단말을 한번 더 해드려야 할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감사합니다. ^^
Commented by 빙♡ at 2007/03/12 20:42
대다넹~ 'ㅁ'/
Commented by 후니훈 at 2007/03/12 21:05
처음으로 입원해보면서 여러가지로 병원에 대해 실망한 바가 많았어요.
마치 기계 수리하듯(제가 컴퓨터 오토바이 수리할 때도 그렇게 무덤덤하게 고치진 않을 텐데) 제 몸이 다뤄지는 것에대해 많이 충격받았어요.
-드라마가 깊이 들어간 만화, 영화를 평소에 많이 봐서 그런가봐요-
제 몸이 힘든 것은 둘째 치고서라도 다시는 병원에 가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절실히 했습니다. 의사, 간호사 선생님들 바쁘고 힘들어서 그런 것은 이해를
하겠지만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Commented by 정목 at 2007/03/12 22:05
緣/affinity님 / ^-^ 네~ 저도 열심히 노력중입니다.

이온님 / 작은 친절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알고부터 친절하기 위해 애쓰는 중입니다. 쉽진 않더라구요. ㅎㅎ

climber님 / ㅋㅋ 잘 지내고 계신가~

ontoj님 / 저도 정말 급할때는 어쩔수 없이 신경을 못쓰는 때가 있습니다. 많이 노력중이에요~ ㅎㅎ

뉴빙 / 어옝~ >0</

훈이 / 저런~ 많이 힘들었겠구나. 특히나 대학병원에선 좀 심한 편이지. 주치의 한명이 많게는 30명씩 환자를 봐야하니 쉽지 않을 일인것 같아. :)
Commented by 大山 at 2007/03/12 22:19
멋지네요~ 인턴 생활 이야기 재밌게 읽고 있어요, 계속 재밌는 글 많이 올려줘요~ :)
Commented by Lime at 2007/10/31 00:55
이러쿵저러쿵 하다 우연히 들어와 읽게되엇는데.. 좋은 의사가 되실듯 싶네요.
아, 환자분들께만 잘해주시지 마시고.. 간호사들에게도 잘해주는건 어떨까요?^^
간호사들에게도 잘해준다면 더더욱 좋은 의사가 되실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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